여러분은 초록색 하면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시나요? 아마도 열의 아홉은 싱그러운 자연의 이미지를 떠올리실 것 같은데요, 서양에서 한 때는 초록색이 죽음, 독, 악마의 색으로 여겨졌을 때가 있었는데요, 오늘은 초록색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초록색은 왜 죽음, 독, 악마의 색이었을까?
무함마드가 사랑한 초록색 → 악마의 색
이슬람 국가에서는 초록색을 신성시하는데, 이는 예언자 무함마드가 흰색과 함께 초록색을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쿠란에 의하면 낙원에서 입는 가운이나 나무 사이에 흩어져 있는 비단 소파는 모두 나뭇잎의 초록색이고, 중세 이슬람의 시에서 천상의 산인 '콰프'나 그 위로 펼쳐진 하늘, 아래로 흐르는 물은 전부 초록색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초록색이 무함마드의 최애색으로 여겨진 것에 대해서 종교학자들과 역사가들은 불모지인 사막에서 시작된 이슬람 문명이 자연에 대한 소중함과 열망을 초록색에 대한 사랑으로 치환했다고 해석합니다. 메마르고 거친 중동 지역에서 초록색이야말로 천국과 같은 낙원을 묘사하기에 가장 적합한 색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현대에서도 이슬람 국가들의 국기에서 초록색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서양에서는 12세기부터 녹색이 악마 또는 악한 생물과 시각적으로 얽혔는데, 녹색을 신성하게 여기는 무슬림과 기독교 특별히 십자군 사이의 고조되는 적대감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결국 중세 유럽에서 초록색은 악마 또는 마귀와 관계 깊은 색으로 여겨지게 되었으며, 연극 무대에서는 초록색 분장을 한 삶들이 역겨운 최후를 맞이하는 전통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악마, 마귀를 초록색으로 이미지화했던 중세의 전통은 현대의 히어로 시리즈에서 주로 초록색으로 이미지화되는 악당들에게까지 이어지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에메랄드 그린과 압생트 → 죽음의 색
1775년 스웨덴 화학자 카를 셸레는 구리 성분의 전통 안료인 버디그리와 말라카이트를 대체할 불투명한 연두색을 발명하고서 자신의 이름을 따 '셀레의 녹색'이라고 명명했습니다. 당시에는 물감으로 쓸 녹색이 많지 않아서 예술가들에게 바로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유독할 뿐 아니라 산과 황에 닿으면 변색되 인기를 잃게 되었습니다.
1808년 셀레의 녹색을 개선하려는 시도에서 에메랄드 그린이 개발되었습니다. 셀레의 녹색보다 내구성은 있었지만, 카드뮴이나 울트라마린처럼 황이 함유된 색과 닿으면 갈색으로 변했습니다. 그러나 전통적인 녹색보다 밝고 선명해서 염색공과 예술가들이 선호하는 안료로 급부상하게 되었습니다.
빅토리아 시대에는 에메랄드 색상이 옷, 벽지, 커튼, 양초 등 광범위하게 사용되었습니다.
버디그리에 비소 화합물을 반응시켜 만든 에메랄드 그린은 여전히 셀레의 녹색처럼 매우 유독했는데, 인쇄된 벽지에 자주 사용되어 많은 사람이 지속적으로 치명적인 독성에 노출되었습니다. 더욱이 수분과 반응하면 유독한 비소 증기가 나와 습한 날씨의 유아원에 있던 아이들이 사망하게 되는 일도 일어났습니다.
일찍이 1815년부터 에메랄드 그린의 독성에 대한 의심이 있었으나 가정용품과 음식의 색소로 사용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는 데는 수십 년이 걸렸습니다. 과학적으로 인체에 치명적인 독성이 증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에메랄드 그린의 생산은 1960년대가 되어서야 금지되었습니다.
에메랄드 그린과 더불어 유럽을 녹색 공포로 빠져들게 만든 것은 압생트(Absinthe)라는 술이었습니다.
프랑스 의사 피에르 오흐디네흐는 프랑스혁명 직후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레시피를 바탕으로 환자의 강장제를 조제한 것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의료용으로 사용되다가 1860년대부터 싼 곡물 알코올로 만들기 시작하면서 압생트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 오스카 와일드, 에드거 엘런 포 등 많은 예술가들이 사랑했지만, 압생트는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압생트 마니아가 환각 및 치료 불가능한 광증의 사례를 보임으로써 압생트가 독극물이라는 공포가 널리 퍼졌지만, 여러 실험을 통해 압생트의 진짜 문제는 55-75 퍼센트의 높은 도수 때문임이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노동계급과 반문화 추종자들, 찝찝하도록 독약의 분위기를 풍기는 녹색 때문에 압생트는 독, 죽음과 연관 지어지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습니다.
현대의 초록색 이미지
올해의 색을 매년 발표하는 팬톤은 2013년에는 에메랄드 그린을 선정하면서 성장, 갱신, 번영, 재생의 색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또한 치유와 통합을 상징하기 위해 녹색을 선택했다고 소개합니다.
어쩌면 그동안의 불명예스러운 이미지를 벗겨버리고 자연의 아름답고 생명감 넘치는 원초적인 초록색의 이미지로 복원시키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비소가 들어간 녹색 안료, 압생트가 몰고 온 죽음의 녹색 공포와 반이슬람에서 비롯된 녹색에 대한 거부감은 현대에 오면서 사라지고, 녹색이 지닌 원초적인 아름다움, 자연의 싱그러움, 생명의 에너지와 같은 긍정적인 이미지로 회복되었으며, 환경오염이 전지구적인 문제가 된 지금, 녹색은 우리가 회복해야 할 지구의 색으로써 더욱 중요한 색이 되었습니다.
또한 건강한 식습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웰빙 라이프에 대한 선호가 증가함으로써 자연의 순수함과 깨끗함, 건강함을 상징하는 녹색의 이미지는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여겨집니다.
지금까지 역사 속에서 녹색의 이미지의 변천사를 알아보았는데 재미있으셨나요? 다음에도 또 흥미로운 색 이야기 들고 오겠습니다.
이상 달달 연구소장이었습니다.
See you
< 참고 문헌 >
- 컬러의 말, 카시아세인트클레어, 윌북, 2021.
- 예술가들이 사랑한 컬러의 역사, 데이비드 콜즈, 영진닷컴, 2020.
< 참고 사이트 >
- 한림학보,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의 최애 색깔이 녹색 코란 속의 낙원도 온통 초록색으로 묘사해", 심훈 미디어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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