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지구상에서 가장 검은 물질이면서 가장 독특한 안료인 밴타블랙에 대해서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검은 물질, 밴타블랙
밴타블랙이란?
밴타블랙(Vantablack)은 '수직으로 정렬된 나노 튜브 배열(Vertically Aligned NanoTube Arrays)'의 약자입니다. 밴타블랙은 엄밀하게 말하자면 색이 아니므로 팬톤 등록 번호도 없습니다. 이 물질은 자극을 받으면 일어서는 '포레스트(Forests)'라고 불리는 아주 미세한 슈퍼 탄소 단섬유가 수직으로 정렬된 나노 튜브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경이로운 물질은 201년 영국 기업 '서리 나노 시스템즈(Surrey Nanosystems)'의 탄소 나노 튜브 제작 공정을 통해 탄생했습니다.
밴타블랙은 가시광선을 99.96%까지 흡수하기 때문에 육안으로는 밴타블랙이 칠해진 물체의 모양을 가늠하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머리카락 굵기의 1만 분의 1 정도로 아주 가늘고 미세한 탄소나노튜브를 수직으로 촘촘하게 배열하면 튜브와 튜브 사이에서 빛이 갇혀 버리게 되는 원리입니다.
이러한 원리로 밴타블랙은 평면에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시커먼 검정으로 보이고, 삼차원 물체에 적용하면 물체의 윤곽이 느껴지지 않아 완벽한 이차원적 형태로 보이게 됩니다.
그래서 밴타블랙은 '세상에서 가장 검은 검은색', '가장 순수한 검은색', '인간이 만든 블랙홀'이란 수식어가 붙게 되었습니다.
밴타블랙의 단점과 응용 분야
나노튜브는 굉장히 작습니다. 1평방 센티미터에 약 10억 나노 튜브가 담겨 있습니다. 아주 정교해서 만지는 즉시 코팅이 손상되는데, 닿는 무게에 견디지 못하고 나노 튜브가 붕괴되는 것입니다.
벤타블랙은 물리적인 접촉으로 표면이 손상되지 않으면서, 과학적으로 응용될 수 있는 분야에서 개발되고 있습니다. 이 독특한 물질은 미국 항공 우주국(NASA)의 심우주 통신망과 광학 장비에서 쓰이고 있으며 예술계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아니쉬 카푸어가 밴타블랙을 독점하다.
인도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미술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는 이 밴타블랙을 자신의 작품에만 사용할 수 있도록 서리 나노 시스템즈 측에 독점 허가를 신청했고, 전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예술 프로젝트 연작을 제작하였습니다.
나를 제외한 사람의 사용 및 소지를 금지한다.
이미 사서 소지한 사람들이 있다면 강제로 압수하겠다.
아무에게도 밴타블랙을 팔지 않고 내 예술작품만을 위해 쓰겠다.
하지만 특정 색상을 한 사람이 독점을 한 것을 두고 다른 디자이너와 예술가들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이라고 분노하였습니다. 예술 역사상 도료, 재료를 비싸게 판 적은 있어도 아예 판매조차 하지 않고 한 사람이 독점한 사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니쉬 카푸어만 쓸 수 없는 블랙
아니쉬 카푸어의 독점권에 분개한 예술가 스튜어트 셈플( Stuart Semple )은 블랙 2.0을 개발하였습니다.
블랙 2.0은 가시광선 흡수율이 약 97.5%로 밴타블랙보다 품질이 떨어져 연구용이나 공업용으로는 대체품이 될 수 없지만 그 외의 분야에서는 밴타블랙과 거의 유사한 효과를 지니며, 접착력도 좋아서 천문학적인 가격인 밴타블랙과는 달리 11.99파운드로 매우 값이 싼 장점이 있습니다. 스튜어트 셈플은 블랙 2.0을 모두 사람들이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도록 하였지만, '아니쉬 카푸어는 이용불가'라는 조건을 걸어 판매함으로써 밴타블랙을 독점한 아니쉬 카푸어에게 통쾌한 복수를 하였습니다.
No available to Anish Kapoor
아니쉬 카푸어는 이용불가
이후 스튜어트 셈플은 2019년 가시광선을 최대 99% 흡수할 수 있는 블랙 3.0을 개발하였습니다.
이것 역시 아니쉬 카푸어만은 사용하지 못한다는 조건하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밴타블랙은 아니쉬 카푸어만 사용할 수 있는 블랙이고, 블랙2.0과 3.0은 아니쉬 카푸어만 사용할 수 없는 블랙인 것입니다.
그러나 블랙시리즈는 품질이 떨어지고, 밴타블랙은 독점권과 비싼 가격 문제를 가지고 있기에 MIT 연구진은 밴타블랙보다 더 검은 물질을 개발하였고, 이로써 밴타블랙이 세상에서 가장 검은 물질이라는 상징성마저 내어 주게 되었습니다.
이 물질은 가시광선의 99.995%를 흡수함으로써 밴타블랙보다 0.03% 더 높습니다. 또한 연구진은 자신들이 개발한 물질을 비상업적인 활동에 한해서 예술가들에게 제공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검은 물질'을 두고 독점권을 행사하려던 한 예술가는 그것으로 유명세를 얻긴 하였지만, 동시에 동료 예술가들에게는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었고, 과학자들에 의해서는 '세상에서 가장 검은 물질'이라는 타이틀마저 빼앗기게 되었네요.
밴타블랙은 이제 더 이상 세상에서 가장 검은 물질은 아니게 되었지만, 밴타 블랙을 둘러싼 독점권과 이기적 예술가에 대한 복수 스토리는 앞으로도 계속 언급될 것 같습니다.
이번 포스팅을 하면서 어려워서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
이상 달달 연구소장이었습니다.
See you
< 참고문헌 >
- 예술가들이 사랑한 컬러의 역사, 데이비드 콜즈, 영진닷컴, 2020.
- 컬러의 일, 로라 페리먼, 윌북, 2022.
< 참고 사이트 >
- 이데일리, "세상에서 가장 검은 검은색 반타블랙", 이연호, 2019.05.06.
- 나무위키, "반타블랙"
- NTDTV korea, "가장 검은색 물감 독점권 사서 ' 나 빼고 아무도 쓰지 마라'고 한 영국 화가가 '참교육' 당했다", 안인규, 2022.10.28.
- nownews, "역대 가장 완벽한 블랙 개발... 99.995% 빛 차단", 윤태희, 2019.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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