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즐리(Paisley)는 패션업계에서는 클래식한 패턴 중 하나로 오래된 역사만큼 꾸준히 사랑받아오고 있습니다. 오늘은 페이즐리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페이즐리(Paisley)의 모든 것
페이즐리란?
옥스퍼드 사전에서 페이즐리는 "인도 솔방울 디자인을 기반으로 한 곡선 깃털 모양의 도형이 독특하고 복잡하게 얽힌 패턴"이라고 정의합니다.
눈물방울, 망고, 쉼표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페이즐리는 페르시아어로 보테 boteh(또는 부타 buta)로 불렸습니다.
페이즐리는 어디에서 왔을까?
페이즐리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기원전 1700년 고대 바빌론을 페이즐리의 기원으로 보는 주장과 고대 인도-이란을 기원으로 보는 주장이 있고, 그리고 기원전 200-650년 페르시아를 기원으로 보는 주장도 있습니다.
기원에 대해서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학자들은 페이즐리의 기원으로 추측되는 나라들이 조로아스터교라는 종교를 공유했다는 점에 주목을 합니다. 그래서 조로아스터교의 종교적 상징인 사이프러스 나무를 표현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 주장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근거로는 조로아스터교와 불의 나라로 알려진 아제르바이잔이 오늘날에도 페이즐리 모양을 국가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조로아스터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페이즐리 패턴은 인도, 중국, 인도네시아, 영국, 남미 등 여러 나라도 퍼지며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해 나갔습니다. 페이즐리 모양은 다양한 문화권에서 사용되면서 각 문화에 맞게 캐슈너트, 망고, 대추야자 등으로 설명되곤 하였습니다.
그중 페이즐리가 많이 유행하고 발전한 나라는 인도와 영국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인도와 영국에서 꽃 피운 페이즐리
이란 지역을 중심으로 시작된 페이즐리 패턴은 1400년대에 오면 인도 카슈미르 지역으로 옮겨졌습니다. 당시 카슈미르 지역은 숄 제작으로 유명하였는데, 페이즐리 패턴의 숄은 매우 인기가 있고 유행했다고 합니다.
무갈제국의 황제 악바르(Akbar)의 통치 기간(1556-1605) 동안 페이즐리 숄은 매우 인기가 있어서 숄 직조 생산량은 극적으로 증가했다고 합니다.
18세기와 19세기에 영국의 동인도 회사는 카슈미르의 숄을 영국 스코틀랜드로 들여왔는데, 그곳에서 바로 복제되고 유행되었다고 합니다. 그곳은 바로 당대 유럽의 최고 직물 생산지였던 스코틀랜드의 페이즐리 마을이었습니다. 인도에서 부타(bootar)라고 불리던 패턴은 영국의 스코틀랜드 페이즐리 지역에서 숄이 대량 생산되면서 패턴에 '페이즐리'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그러나, 페이즐리란 용어는 공식적으로 통일된 용어는 아니었고, 미국에서 퀼트 제작자 사이에는 '페르시아 피클'로, 웨일스 섬유 산업계에서는 '웨일스 배'라는 용어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인도에서 들여온 캐시미어(cashmere) 숄은 영국의 숄보다 부드럽고 보온성도 좋아서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많은 인기를 얻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유럽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페이즐리 숄이 대량 생산되어 가격이 낮아졌고, 중산층 사이에서도 보편화되면서 디자인의 인기는 더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영국 페이즐리에서 생산된 숄은 직기를 사용하여 페이즐리 문양을 표현했다면, 프랑스에서는 페이즐리 문양을 직물에 인쇄하는 방법으로 대량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프린팅 된 페이즐리는 값비싼 우븐 페이즐리보다 가격이 저렴해서 많은 인기를 얻었다고 합니다.
페이즐리 수요의 감소가 가져온 효과
19세기 유럽의 인쇄 기술이 발달하게 되면서 페이즐리 패턴의 직물은 대량 생산되었고, 세계적인 수요 물량을 감당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1880년대 카슈미르 지역에서 기근이 발생함과 맞물려 숄의 인기는 하락하게 되었습니다. 빈곤으로 생계가 어려워진 직공들은 호주와 캐나다 등지로 이주를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숄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게 되자, 남미 시장을 겨냥하여 숄이 아닌 망토(판초)의 형태로 변형되었습니다.
페이즐리 수요의 감소로 인해 오히려 페이즐리 패턴이 더 다양한 나라로 전파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1960년대 페이즐리가 다시 부활하다.
1960년대는 서양 문화에서 페이즐리 패턴이 크게 부활했던 시기였습니다.
1968년에는 프랑스에서는 기존의 가치와 질서에 저항했던 68혁명이 있었고, 미국에서는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면서 히피(hippie) 문화가 붐을 이루던 시대였지요.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외쳤던 히피는 동양풍의 패턴, 페이즐리 패턴, 꽃무늬 패턴 등의 옷을 입으며 히피룩(hippie look)을 주도해 갔습니다. 더욱이 대중문화도 페이즐리의 유행에 한몫을 했는데, 비틀스, 롤링 스톤즈,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 더 킹크스, 더 후, 더 스몰 페이스 등 당대 가장 힙한 예술인들의 영향력이 컸습니다.
비틀스는 페이즐리에 열광했고, 특별히 존 레논은 자신의 롤스로이스에도 이 패턴을 그리기까지 했습니다. 페이즐리는 60-70년대의 시대정신과 연결 지어지면서 반항과 저항, 평화와 자유 그리고 범우주적 사랑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Liberty의 직물 디자이너이자 예술가인 사라 켐벨(Sarah Campbell)은
60-70년대의 페이즐리를 회상하며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 그것은 시대에 맞는 어떤 신비로움과 동양적인 약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페이즐리의 기원 때문에 항상 이국적이고 고급스러운 느낌이 있었습니다.
이는 양식화되어 있고 복잡함과 깊이가 있는 유기적 모티프입니다."
ETRO와 페이즐리
제가 학창 시절(80-90년대)에 ETRO라는 이태리 브랜드가 엄청 유행했었답니다.에트로는 페이즐리 패턴으로 유명한 브랜드인데, 당시 백화점 침구매장에 가면 페이즐리로 가득 찬 에트로 침구세트가 센터에 진열되어 있었고, 페이즐리 패턴의 에트로 머리띠도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에트로의 디자이너 베로니카 에트로(Veronica Etro)가 BBC Culture와 인터뷰한 내용에서 그녀는 페이즐리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Etro의 과거, 현재, 미래의 중심
수천년에 걸친 페이즐리의 여정은 나에게 매우 영감을 줍니다.
나는 역사가 풍부한 상징을 좋아합니다.
페이즐리는 생명나무, 야자나무, 즉 다산을 상징합니다.
그것은 항상 매력적이고 이국적이며 동시에 멋집니다.
에트로 브랜드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에트로 홈페이지를 참고해 주세요.
페이즐리 박물관
영국 스코틀랜드 페이즐리에는 페이즐리 박물관(Paisley Museum and Art Galleries)이 있습니다. 1871년 피터 코츠 경(Sir Peter Coats)에 의해 페이즐리 마을에 기증되었으며, 이곳에는 800점이 넘는 그림을 포함하여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큰 시립 미술 컬렉션 중 하나가 소장되어 있습니다. 또한 박물관에는 페이즐리와 지역 역사, 섬유 산업의 중요성에 대해서 다루고 페이즐리에서 발전한 고급 숄 산업의 역사를 추적하는 문건과 물건들이 소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페이즐리 박물관은 2015년에 페이즐리 자료를 디지털화하는 프로젝트를 펼치는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페이즐리 유산을 보존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합니다.
아쉽게도 현재는 보수공사로 인해 폐쇄되었으며, 2025년에 재개관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오랜 역사를 가진 페이즐리 패턴이 가진 히스토리, 재미있으셨나요?
다음에 또 재미있고 흥미 있는 패턴 이야기 가지고 돌아오겠습니다.
이상 달달 연구소장이었습니다.
See you
< 참고사이트 >
- paisleypower.com "The History of the Paisley Symbol and Paisley Pattern"
- adamley.co.uk "Everything you need to know about the Paisley pattern"
- ponytailjournal.com "The counterculture power of Paisley"
- bbc.com "Paisley: The story of classic bohemian print"
- 위키피디아 "페이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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