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BRIC

청바지의 역사

달달 연구소장 2024. 5. 10. 16:56

 

여러분은 청바지를 몇 벌 가지고 계신가요? 저는 워낙 편한 스타일을 좋아하다 보니 계절별로 해서 청바지가 4벌이나 되더라고요. 아마도 여러분들도 옷장에 청바지 한 벌 이상씩은 가지고 계실 것 같네요. 오늘은 남녀노소 국민 바지라 할 수 있는 청바지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청바지의 역사


청바지의 역사는 19세기 중반, 미국 서부 개척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850년경, 이른바 골드러시(Gold Rush)가 시작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의 금광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
리바이 스트라우스 Levi Strauss도 
금에 대한 환상을 품고 서부로 이동한 사람들 무리에 끼어 있었지요.
 
이름에서 벌써 눈치채셨지요?
맞아요. 리바이스의 창립자입니다.
 

Levi Strauss
리바이 스트라우스(1829-1902) ⓒ위키백과

 
그는 독일계 유대인으로 부친의 사망 이후 미국으로 이민 가서 골드 러시 행렬과 함께 서부로 이동했습니다.
모두가 금광에 빠져있을 때, 그는 작업에 필요한 질긴 천을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유대인의 상업적 촉 덕분인지 블루 오션(blue ocean)을 개척한 거지요.
 
어느 날, 한 사업 중개업자가 약 10만 장에 달하는 천을 리바이 스트라우스에게 주문했는데,
주문자가 주문을 취소하면서 대량의 재고가 발생하는 사건이 생겼습니다.
그는 이 재고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광부들이 입을 작업용 바지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고,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당시 바지는 염색을 하지 않은 생지로 만들었기에
모두 아이보리 ivory 색이었어요.
 
밝은 아이보리 색은 광부들의 작업복으로는 적합하지 않았던 거죠.
 
염색의 필요성을 느낀 리바이는
인도에서 수입해 들여온 '인디고'로 염색을 하기 시작했고,
푸른빛 작업복 바지는 이전 보다 더 열광적인 인기를 얻으며 팔려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본격적으로 바지 사업을 벌이게 된 리바이는
제품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프랑스의 님(Nimes)이라는 지역에서 면을 직접 수입했는데,
이 원단을 세르주 드 님(Serge de Nimes) 즉, '프랑스 님에서 생산되는 능직물'이라고
불렀고 여기서 데님(Denim)이라는 용어가 탄생했다고 하네요.
 

직물 조직

 
 
인기가 고공행진을 하던 인디고 염색 청바지는 
땀을 많이 흘리는 광부들의 피부를 파랗게 물들인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어요.
 
이것은 불용성 염료인 인디고가 원단에 잘 염착 되지 않아서 생긴 일이었지요.
 
리바이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원단을 트윌(Twill)로 짜고 위사는 염색을 하지 않는 기발한 방법을 생각해 냈어요.
이렇게 하면 원사를 염색한 바지는 
바깥쪽은 파란색이 되고,
피부에 닿는 안쪽은 염색되지 않은 흰색으로 남아 있게 되어서
피부를 파랗게 물들이지 않게 되는 거죠.
 

denim
denim

 
물 빠짐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했는데 ( 후에 합성 인디고가 발명됨 )
이번엔 주머니가 문제였어요.
 
라트비아, 리가 출신의 제이콥 데이비스(Jacob Davis)는 
네바다주 리노(Reno)에서 재단사로 일하던 중
광부들이 바지 주머니에 연장을 넣고 일하다 보니
바지 주머니가 자주 뜯겨져서 수선을 맡기는 모습을 보고는
작업복에 압력 받는 부분에 구리 리벳(Rivet)을 다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었고,
제이콥은 리바이에게 특허 파트너십을 제안하는 편지를 썼습니다.
 
1873년 5월 20일, 제이콥 데이비스와 리바이스 스트라우스는
미국 특허를 획득합니다.
 

 *** 특허번호 139,121 : "의복 포켓 보강"

 

Levi Strauss-Jacob Davis
(좌)리벳을 단 청바지 (우) 리바이스와 제이콥ⓒLevi's

 
리바이스와 제이콥의 협업으로써
최초의 청바지 501이 탄생하게 되었으며
501이라는 로트 번호는 1890년에 처음으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리바이스
리바이스 501

 
청바지 뒤쪽에 달려있는 커다란 라벨을 자세히 보면
두 마리의 말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달려서
청바지의 인열 강도를 시험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어요.
 
그만큼 리바이스 청바지가 튼튼하고 질기다는 자신감을 표현하는 것이겠죠.
 
501 모델로 미국 서부에서 성장한 리바이스는
세계대전 시절 군대에 청바지를 납품하기 시작하면서
미국 전역으로 전파되기 시작했어요.
 
1953년 영화 "The Wild One"에서 말론 브란도 Marlon Brando가
리바이스 501에 부츠, 블랙 바이커 재킷을 착용하여 큰 이슈가 되었고,
이후 리바이스 501은 십 대의 반항을 상징하게 되었습니다.
 

Marlon Brando
말론 브란도

 
 
그런데 전,
반항의 아이콘이라고 하면 말론 브란도보다 제임스 딘 (James Dean)이 먼저 떠오르더라고요.
 

James Dean
제임스 딘ⓒLee

 
제임스 딘이 광고한 Lee는
1889년 헨리 데이비드 리 (Henry David Lee)가 설립한 미국의 의류 브랜드로,
리바이스, 랭글러와 함께 청바지의 3대 브랜드로 꼽히고 있습니다.
 
아무튼, 각종 영화를 통해
청바지는 '젊음', '반항', '자유'의 이미지를 덧입게 되었고
이런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샌드 블라스트 공법이 사용되곤 했어요.
 

sand blast
ⓒEBS

 
샌드 블라스트 방식은 모래를 압축 살포해서 데님의 색 바랜 느낌을 주고,
데님 원단을 부드럽게 하는 장점이 있어서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어요.
 
하지만 2009년 데미지 가공을 위해 샌드 블라스트를 사용하던 터키 노동자가 진폐증으로 사망하면서,
모래 먼지의 실리카 문제가 이슈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진폐증 문제로 2011년부터는 리바이스, H&M, 타깃 등이 샌드 블라스트 방식을 규제하고 있어요.
 
유니클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데미지 가공을 레이저로 바꿨다고 하네요.
 
이전 글들에서도 언급했듯이
생산과정에서 환경오염 물질을 줄이고,
노동자의 작업 환경을 개선하는 
기업의 윤리의식이
어느 때보다 필요해 보입니다.
 
지속 가능한 패션으로서
앞으로도 청바지가 대중의 사랑을 받기를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치겠습니다.
 
이상 달달 연구소장이었습니다.
 
See you
 
 

< 참고 문헌과 사이트 >

  • www.levi.co.kr
  • 위키백과
  • Textile Science - Merchandiser에게 꼭 필요한 섬유지식, 안동진, 한올출판사, 2015
  • 네이버 블로그 Biz insight, "지속가능 기업의 책임과 역할"